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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화장실 청소하다가

Life

by oreorecord 2023. 12. 9.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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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9 주로 청소에 대한 일기_손에 락스를 묻히며 별의 별 생각

 

오늘 오전엔 하루 종일 해도 티도 안나는 화장실 바닥과 신발장 바닥, 집의 걸레받이 위 먼지 청소를 했다.  

수도꼭지 수전 틈새도 칫솔로 빡빡 닦았다. 안 한 것보단 낫지만 뭔가 호텔처럼 아주 깨끗하게 하고 싶은데 그렇게는 잘 안된다. 아직 난 청소 초보자이다. 시간을 줄이면서 좀 더 효율적으로 하는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생각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도시는 물이 약간 안 좋아서 더 화장실에 때가 자주 끼는 느낌이다. 시골인 부모님 댁은 그렇게 물 때가 안 끼는데 참 신기하다. 물이 깨끗해야 청소 빈도도 줄어드는 건가? 물이 맑은 곳에 살고 싶은 이유가 하나 추가 되었다. 

 

청소를 하는 데 고무장갑 안 으로 물이 새어 들어왔다. 나는 내가 물을 쓰다가 안으로 들어온 건지 알았는데 청소가 끝나고 난 후 장갑에 구멍이 났던 것을 알 수 있었다. 락스도 많이 썼으니깐 당연히 내 손에 락스도 많이 묻었겠다 싶어서 아차 싶었다. 물로 황급히 씻어냈다.

 

문득 어떤 관계는 이럴 수도 있겠구나.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고무장갑을 끼고 대적해려했지만 락스의 독함이 나의 장갑을 녹이고 서서히 나도 모르는 사이 그 구멍사이로 나에게 스며들고 나를 서서히 죽일 수도 있겠구나.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손에 락스를 묻히며 별의별 생각을 해보았다. 지금 나에게 그런 관계는 없나. 조금씩 구멍이 생기고 그 틈으로 안 좋은 것들이 들어온 후 결국 나를 파괴할 그럴 관계. 인간관계는 쉽지 않다. 나만 잘해서 되지는 않으니깐. 

 

 

어제 막 다 읽은 최은영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라는 책 중에 이러한 구절이 있다. 

 


이모가 떠난 방에는 김치냉장고가 들어갔고, 담금주 병들과 청소기, 잡동사니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이모의 손이 닿지 않은 집 안은 더러워졌다. 곳곳에 뿌옇게 먼지가 앉았고 욕조에는 분홍색 물때가 꼈다. 아빠의 오줌 자국이 변기 커버에 그대로 말라 붙어 있을 때도 있었다.
그즈음 엄마는 내게 핸드폰을 사줬다. 엄마는 야근하는 날이면 아빠 밥상을 차리라고 문자를 보냈다. 나는 엉성한 솜씨로나마 계란말이를 하고 엄마가 끓여놓은 국을 데우고 반찬을 꺼내서 밥상을 차렸다. 아빠는 밥을 먹는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다 먹고 나서는 아무것도 치우지 않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 일들에 나는 점점 지쳐갔다.
화장실 청소를 하며, 손에 락스를 묻히며 별의별 생각을 해보았다. 

 

 

 

 

집안일이란 이런 것이다. 이모가 묵묵히 해주고 있어서 그 소중함을 몰랐던 것이지 손이 안 가면 바로 티가 나기 시작한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엄마가 세 들어 살 던 우리 집 화장실을 주기적으로 엎드려 청소했을 것이고, 공중화장실도 누군가가 시간대 별로 치워 주고 있는 것이다. 살면서 나 또한 엄마가 집안을 정리하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게 생각한 적이 없는 것 같다. 너무 당연한 일로 녹아있던 것이지. 불현득 어릴 적 엄마가 주기적으로 화장실에 물을 부어대고 걸레질을 했던 광경들이 떠오르면서 우리를 키우면서 얼마나 많은 청소를 했을까 뒤늦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자라면서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으니깐, 매일 반복되는 일이라고 그 수고로움과 고마움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저 위의 아버지의 문제는 3가지이다. 1. 오줌 자국을 처리하지 않은 것 (볼일 본 뒷자리는 늘 다음 사람을 위해 깨끗이 유지해야 하려는 마음을 갖도록) 2. 밥을 먹는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은 것(고맙다는 말을 해야 했음) 3. 아무것도 치우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는 것(같이 치워주거나 누군가 치워주면 고맙다고 얘기할 것) _ 아마 이렇게 생활하면서도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여자들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표현한 최은영의 소설을 읽고 생각하면 좋겠다. 그리고 문제적 관계가 좀 더 나은 관계로 나아가길 바라본다. 모든 것은 디테일이고 사소한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니깐_ 

 

 

손님이 온다고 하면 아마 누구든지 화장실 상태를 가장 먼저 점검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화장실은 집안이 잘 관리되고 있는지 단 번에 보여 줄 수 있는 척도인 것 같다. 주거에서 화장실이 차지하는 비율도 점점 커져 가는 것 같다. 행복이 별 건가 싶다. 보일러가 들어오는 따뜻한 온돌바닥에 발을 대고 볼일을 보는 일, 겨울에도 따뜻한 공간에서 샤워를 하는 일. 그런 것들이 나에게 사실은 굉장히 큰 행복이다. 개인적으로 공간이 주는 힘이 크다고 생각하는데 그 중에서도 삶의 질은 화장실에서 온다고 생각할 만큰 화장실을 아낀다. 지금도 바닥에 온기가 도는 화장실에 발을 댈 때마다 참 감지덕지하다. 화장실 청소를 하면서 화장실 청소를 할 집이 있어서 행복하단 생각이 들기도 했다. 

 

돈을 내고 호텔이나 어느 좋은 곳에 가는 것보다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집의 청결에 가장 신경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묵묵히 한다. 하루 종일 청소로 시간을 다 보냈을 때는 기분이 좋기도 하지만 시간이 아깝기도 하다. 살아있는 동안은 영원히 청소의 뫼비우스 안에 살게 되겠지. 청소를 하며 느끼는 기쁨도 있지만 그 끝 없는 도돌이표에 가끔은 지치기도 한다. 그래도 청소를 좋아하는 편이다.

 

깨끗한 공간을 봤을 때 그 공간을 위해 애쓴 누군가를 항상 기억하고 감사하고 당연하게 여기지 않도록, 그리고 개인 공간이든 공용 공간이든 어디든지 내가 더럽히면 누군가는 또 고생을 할 것임으로 깔끔하게 쓰도록 한다. 

 

청소를 마치고 해지기 전 자전거를 타고 도서관에가서 예약도서 2권을 빌려오고 이마트 가서 잡채재료를 사고 집에 와서 토마토리소토를 저녁으로 먹고 누가 맛있다고 해서 산 노브랜드 고르곤졸라팝콘과 우유를 먹고 잡채재료를 다듬어놓았다. 과자는 먹고 늘 후회한다. 이제 진짜 안 먹어! 과자! 한 동안은 화장실청소 안 해도 되겠다. 좀 늦었지만 이제 운동을 하고 씻고 자면 오늘도 그럭저럭 잘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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